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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마르세유에서 벌어진 의학적 논쟁 ⅰ 베니스 공화국이 레반트와 교역하는 것을 가장 부러워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마르세유 주민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석호 가운데 기둥을 박아 집을 짓고 사는 베니스인들의 삶만큼 특이하고 모험적이었다. 마르세유 사람들의 기원도 그에 못지않게 독특했다. 마살리아 혹은 마실리아라고도 하는 도시가 정착된 것은 기원전 6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을 식민화한 이들은 그리스계 사람들로서 소아시아 포카이아 출신의 모험적인 상인들어었다. 이 그리스인들은 갈리아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수세기가 지나 로마의 점령이 점점 더 기세를 떨치면서 로마인들은 그리스-켈트족의 후손들과 결혼을 했다. 이러한 혼혈의 진행을 더욱 가속화시킨것은 한니발이었는데, 그가 이끄는 스페인과 아프리카 군대는 북이탈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에.. 2021. 1. 20.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독일의 제왕 맥주 ⅲ 결국 독일에서 포도재배 권역은 남쪽과 서쪽으로 후퇴하여 라인과 마인 주 다뉴브 계곡으로 옮겨졌다. 그 외 다른지역에서는 제왕 맥주의 승리였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갬브리누스가 윈헨 고원지대를 장악한 이후에 더욱 두드러졌는데 브런즈윅에서 유입된 맥주 주조의 대가들이 한몫 거들었다. 이런 상황에 비엔나, 라티스본 등지에서 조그만 세력권을 이루고있던 커피가 맥주의 나라에 입성할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누구도 비 독일적인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음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오를레앙의 필리프 공작의 부인 리젤로테는 독일 팔츠지방 출신으로 공작부인이라는 신분때문에 파리에서 생활했는데, 이와같은 추세의 상징적인 본보기이다.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 커피에 대한 완강한 거부감.. 2021. 1. 20.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독일의 제왕 맥주 ⅱ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가 북유럽 미술에서 묘사되기 시작했다. 즉 인간의 골격이 철저히 가려진채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딕 미술에서는 이런 형태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나움부르크, 밤베르크 내지는 마그데부르크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사조였다. 뿐만 아니라 기사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무덤에 세워진 숱한 인물상들 가운데서도 그런 특징은 찾아볼수가 없아. 성당 건축이 한창이었던 시대에 조각가들은 모델이 되는 대상의 자연적인 부분을 취해 '눈에 보이는대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묘사하곤 했다. 드물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주류가 아니었다. 따라서 무덤에 세워진 조상이 예외없이 당사자의 초상이라고 추론한다면, 당시 북유럽인들중에서 비만은 아주 드물었던.. 2021. 1. 20.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독일의 제왕 맥주 ⅰ 북부 독일에서 맥주가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로, 그 역사는 250년을 넘지 않는다. 더구나 맥주가 배타적으로 독점한 시기를 이야기하면 그 기간을 더 짧아진다. 트라키아인이나 스키타이인같은 바바리안들처럼 초기 튜튼족도 맥주를 마시기는 했으나 이들은 그리스나 로마인들이 와인을 신격화 했던것처럼 맥주를 신격화하지는 않았으며 맥주를 삶의 중심에 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에 맥주는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었다. 보리나 밀을 발아시킨것으로 만든 음료인 맥주는 타키투스가 편견없이 기술한 바에 의하면 매우 질나쁜 와인을 닮아 있었다. 로마의 역사학자였던 그는 비판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며 단지 튜튼족의 맥주음용에 대해 사견을 개진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튜튼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 요량으.. 2021.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