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상업도시 베니스의 커피교역 ⅱ 어쨌든 독일을 통과하는 육로교역에는 위험이 따랐다. 제국의 모든 무역통로가 엄히 감시되었음에도 약탈과 협박이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게다가 30년 전쟁이후에는 공공연한 사기행각이 독일에서 성행했다. 라티스본의 주교인 길도발두스의 표현을 빌면 '무혈사기극'이 만연했었던 것인데 그는 1668년 이에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무역업자들이 위탁받은 물건을 부정한 방법으로 처분하는 행태가 빈발하고있다." 그러면서 주교는 이들 사기 무역업자들을 색출하여 적절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 영토내의 부동산에 세금을 물렸다. 이리하여 이탈리아의 무역상이 독일로 떠나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독일 상인들이 대거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의 여정은 짐마차를 끌고 덜거덕거리며 캐른텐 알프스에서부터 타글리아.. 2021. 1. 19.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상업도시 베니스의 커피교역 ⅰ 바야흐로 세계무역의 주요 통로로서 많은 양의 커피가 제국의 남동쪽 관문을 통해 비엔나로 꾸준히 유입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독일은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파괴의 위기에서 황제의 수도를 구한 연합군 분견대 병사들은 귀향하면서 커피를 가져가지 않았다. 만약 커피가 당시 드레스덴에 도입되었다면 그곳의 역사가 하셰가 그사실을 기록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계는 비엔나를 침공했던 투르크군이 패한 3일후 1683년 9월 16일에 때마침 추수감사절 축제가 드레스덴에서 열린것을 기록했다. 그해 10월 1일에 드레스덴의 병기창 뒤편에서 전리품 전시행사가 열렸다. "리본으로 묶어놓은 다채로운 색깔의 면으로 된 투르크 막사 5채가 매우 고가의 품목으로 선을 보였고 6자루의 무거운 총도 있었다. 코끼리도 있었지만 찬기후를 이.. 2021. 1. 19. 커피의 역사 1부 이슬람의 와인 - 콜쉬츠키의 수훈 ⅱ 커피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여행서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저명한 의사였던 레온하트 로볼프가 쓴 책으로 여기에는 커피가 스와비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그가 1582년에 발간한 [모르겐란더의 쌀]이라는 책은 콜쉬츠키가 비엔나에다 첫 커피하우스를 연 때로부터 1세기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볼프는 1573년에서 1578년까지 근동에 살면서 멀리 페르시아까지 여행을 했다. 여행중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그는 이 음료가 수백년동안 음용되어왔다는 말을 들ㅇ었따. "사람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마시는 음료가 있었다. 그들이 '카우베'라고 부르는 이 음료는 잉크처럼 검고 위장장애의 치료에 효력이 있다. 아침 일찍 공공장소에서 도자기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었다. 한번에 많이 마시.. 2021. 1. 18. 커피의 역사 1부 이슬람의 와인 - 콜쉬츠키의 수훈 ⅰ 오스만제국의 성장은 계속되었다. 이스탄불의 옛 명칭인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제국의 중심으로 기독교사회를 정복해가는 과정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이 도시를 중앙에 두고 하늘과 동 서 남 북의 방향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1460년 경에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정복되었고 2년후에는 왈라키아가 1517년에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헤자즈, 그리고 이집트가 정복되었다. 또 2년후에는 알제리가 또 35년의 세월이 지나서 트리폴리와 튀니스가 차례로 함락되었다. 그 즈음에 크림, 몰도바, 트란실바니아, 그리고 헝가리가 연맹을 맺거나 속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슬람은 서방 칼리프 세력권의 본령이었던 스페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서방 유럽에 그 어느때보다 큰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동쪽으로는 타타.. 2021. 1. 18.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