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4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꽃핀 영문학 ⅲ 그리하여, 1700년 무렵 영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대표주자들은 커피 음용자였고, 커피하우스의 단골들이 되었던 것이다. 드라이든, 콩그리브, 애디슨, 스위프트, 스틸, 포프, 존 필립스, 피프스, 아버스넛은 많은 시간을 커피하우스에서 보낸 당대의 문호들이다. 드라이든은 사업상 지인들을 만나거나 출판업자들을 만날 때 윌 커피하우스로 불러내곤 했는데, 커피하우스에서 얘기할 때는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편지에 쓴 일이 있다. 실제로 그는 툭하면 "오늘 오후에 커피하우스에 나와"라고 말하곤 했다. 새뮤얼 존슨은 윌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진 시인들의 일상을 이렇게 썼다. "드라이든의 안락의자는 겨울에는 난로 근처에 있다가, 여름이면 베란다로 옮겨졌다. 시인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편안함을 주는 의자에 앉아 사람들.. 2021. 2. 1.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꽃핀 영문학 ⅱ 이 커피하우스는 성 미카엘 성당 맞은편 콘힐에 세워졌기 때문에 신성한 기운이 함께 하게 되었다. "커피 음용의 미덕이 처음으로 공공연히 보여졌으며, 파스칼 로세아에 의해 영국에서 판매되었다"라는 대목은, 커피하우스 위치 때문이었던지 이곳의 평판이 좋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대니얼 에드워즈의 시종은 강력한 적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모했다. 북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거인 맥주가 위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조업자와 선술집 주인들은 맥아와 홉으로 주조되는 술이 조그만 커피콩을 달여낸 즙에 의해 쫓겨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장에게 가서 '자유시민도 아닌' 레반트 사람의 행각을 고발했다. 당시에 외국인들이 영국 국내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던가? 시장은 이를 좋은 지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마부인 .. 2021. 1. 30.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꽃핀 영문학 ⅰ 윌리엄 하비는 죽음이 가까워질 무렵 자신의 변호사를 불러 커피콩을 보여주었다. 그는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홈을 파듯 알갱이들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조그만 열매는 행복과 지혜의 원천이라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 56파운드의 커피를 런던의과대학에 기증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 기증한 커피가 남아 있는 동안에즌 자신의 사망일이 되면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당부했다. 단지 56파운드의 커피를 가지고서! 이는 커피가 아주 소량만 소비되었으며 클레오파트라가 진주와 함께 녹여 썼다는 초제 못지않게 귀한 음료였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커피가 약물로 여겨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비는 자신이 죽고 20년이 지나면 런던 전체의 커피하우스가 들.. 2021. 1. 29.
커피의 향기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투르크 대사와 파리지엔 ⅲ 그로부터 5년이 채 지나지않아, 말리반이라는 또 다른 미국인이 파스칼의 전철을 밟아 루 페로에 조그만 투르크풍 카페를 차렸다. 그가 파스칼과 달랐던 것은 전적으로 커피의 조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품을 다양화해서 담배도 취급한 점이었다. 어느정도 세월이 흐른후 말리반은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파이릐 점포는 기독교로 개종한 페르시아인 조수 그레고르가 인수했다. 그레고르는 모국에서 지낼때 커피와 문학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파리라고해서 뭐가 다를까? 커피콩 속에는 문학적 영감과 유사한 어떤 정신이 숨어있는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커피하우스를 코메디프랑세즈 근처의 루 마자랭으로 옮겨보는것은 어떨까? 그 극장이라면 베르사유에 있는 태양왕의 궁정을 능가하는 첨단 유행의 중심이 아니던가! '극장을 .. 2021.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