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공화국이 레반트와 교역하는 것을 가장 부러워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마르세유 주민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석호 가운데 기둥을 박아 집을 짓고 사는 베니스인들의 삶만큼 특이하고 모험적이었다. 마르세유 사람들의 기원도 그에 못지않게 독특했다.
마살리아 혹은 마실리아라고도 하는 도시가 정착된 것은 기원전 6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을 식민화한 이들은 그리스계 사람들로서 소아시아 포카이아 출신의 모험적인 상인들어었다. 이 그리스인들은 갈리아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수세기가 지나 로마의 점령이 점점 더 기세를 떨치면서 로마인들은 그리스-켈트족의 후손들과 결혼을 했다. 이러한 혼혈의 진행을 더욱 가속화시킨것은 한니발이었는데, 그가 이끄는 스페인과 아프리카 군대는 북이탈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프로방스를 통과해 행군했다. 마리우스의 시대에는 서로 다른 혈통의 이방인인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이 스페인을 드나드는 관문인 론강 입구를 차지하고있었다. 또 오랜세월이 지난 후에는 금발의 고트족이 북쪽으로부터 내려와 북부 지중해 연안에 퍼져살던 다양한 종족의 혈통에 또 다른 피를 섞었다.
론 강은 리옹에서 손 강과 합류해 흘러 뒤랑스 강, 가르 강과 숱한 지류의 사나운 물살과 만나 점점 불어났다. 그리고 바다로 흘러들 즈음에는 대단한 기세를 자랑하는 마르세유의 젖줄이 되었다. 때로는 마을과 촌락이 불타며 내지르는 함성만큼 커지기도 하고 때로는 올리브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만큼이나 작아지기도하는 론강의 물소리를 벗하며 수세기동안 마르세유는 나날이 번창하고, 강해지고, 왁자지껄한 조시로 성장했다. 그리스의 혈통은 이들에게 영광을 부여해주었고, 로마의 유산은 이들에게 강건함을 가져다주었으며, 갈리아의 피는 이들에게 사랑의 마약을 선사했다. 또 고대 카르타고인들이 그랬듯이 이들은 무역과 이윤창출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으며, 동시에 그 모든 선조들처럼 술고래였다. 남유럽 사람들처럼 단지 목을 축이기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안에 흐르는 게르만으 ㅣ피는 와인을 끝없이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은 혈통만큼이나 다양했는데 어떤이는 파누르게 혹은 테오폼프처럼 그리스계 성을 따랐고, 어떤이들은 렌테릭 알베리히, 발터, 아우디베르트같은 프랑크 기사의 이름을 따르기도 했다. 또 대표적인 침례교 이름들 가운데 하나인 마리우스는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을 물리쳤던 로마의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들은 유쾌한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눈은 와인으로 빛났다. 야외를 사랑하는 그들은 주로 착유업자, 포도주 양조업자, 목수, 석공, 부두노동자, 돛 꿰매는 사람, 굴 채취하는 사람들이었다. 마르세유에서는 한 사람이 온닺 일을 소화할수 있었다. 한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이들의 성미에 맞지않았다. 그런건 프랑스인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런이들이 리옹의 북쪽 교외지역이 프랑스에 합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코웃음을 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그들의 비웃음은 근심으로 변했다. 그들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는 강가에 위치한 파리라는 예쁘장한 도시에 대해 듣게 되었다. 점쟁이들은 파리가 마르세유를 이길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허튼소리로만 여겼다. 마르세유의 호사가들은 술집이 즐비한 거리 칸느비에르를 휘청휘청 걸으며 이런 얘기를 주고받곤했따. "만약 파리라는 곳에도 칸느비에르가 있다먄, 꼬마 마르세유 정도로 봐줄수는 있지."
그러나 조롱하는 것으로 위기를 피해갈수는 없었다. 프랑스 왕의 세력은 남으로 계속 뻗어나가, 프로방스와 지중해 연안에까지 이르렀다. 그때까지도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동쪽 국경의 마르세유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중해 연안에 새로 조성된 프랑스의 항구도시들은 번영일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마르세유 공화국의 평의회에서는 미심쩍은 태도로 이를 지켜보았다. 프랑스의 항구도시중에는 베니스와 제노바에 맞서기 위해 힘겹게 정복한 에그모르트가 있었다.
그러나 마르세유는 워낙 별난도시였고 강한 유대를 자랑하는 동맹까지 결성되어있었다. 또한 그들이 동맹한 상대는 다름아닌 강이었고 강의 신이었다. 론강과 강의 신 로다우스야말로 막강한 힘을 갖춘 오래된 벗같은 존재였다. 로다누스가 바다로 이르는 길은 마르세유를 경유하지않았다.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시작되는 이 강의 여정은 마실리아에서 서쪽으로 수마일 떨어진 지중해로 향했다. 이 강은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침전물로 막아버리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지중해에서는 다시 하루를 흘러 삼각주 지대까지 뻗어나갔다. 강어귀의 양쪽 기슭과 그 사이의 분지는 평평한 습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습지 잡초 외에는 어떤 식물도 자라지 않았다. 론 강은 항구 도시와 바다였던 기슭사이에서, 습지를 공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결국 에그모르트는 시리아와 활발한 무역을 전개하며 한 세기를 풍미했으나 결국 갈대 무성한 석호 한가운데의 건조한 고지로 남게되었다.
마르세유가 론강의 어귀에 세워지지않은것은 천우신조였던 셈이다. 이 도시는 갈리아의 남부해안에서 이탈리아와 면한 유일무이한 최고의 항구였다. 프랑스의 왕들은 마르세유가 매력적인 땅임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그들의 거만함과 타협할수밖에 없었다.
프랑수아 1세는 애국심이 투철한 군주로서, 지도를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베니스나 피사, 제노바에서 선적되어 레반트로 가야할 이유가 전혀없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투르크가 프랑스의 산물없이 지탱해 나갈수 없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해하고있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알렉산드리아의 시장에서 단연 인기품목이었던 랑그도크와 카탈로니아의 직공들이 짠 섬유는 낙타에 실려 메카로 운반되고 거기서 다시 인도로 실려갔다. 프랑수아 왕은 이탈리아인들에게서 전해들은 것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다. 이탈리아인들은 마호메트를 믿는 이집트에서는 이교도 여인들이 랭스에서 생산된 리넨으로 즐겨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이야기도 왕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랭스의 직물이 남프랑스에서 곧장 레반트로 가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실 그랬다. 안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1535년이 되던해까지도 프랑스 지식들중 누구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세기가 지난 1634년 레반트와 무역을 하는배한턱이 마르세유에 들어섰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막 돌아온 상인 드 라 로크가 짐을 잔뜩 싣고 귀향하는 길이었다. 그는 마르세유의 외곽에 바다와 포도밭이 한눈에 보이는 멋들어진 농가를 갖고있었다. 집에 돌아와 레반트에서 가지고 온 짐을 풀어놓고 있을때 그의 친구들이 짐사이에서 금속 주전자와 검게 볶은 콩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음료를 만들자 드 라 로크의 마르세유 친구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드 라 로크가 들여와 소개한 음료는 금세 동이났고 10년후쯤에는 커피자루를 실은 노새들이 항구에서 잘 지어진 저택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 그러다 1660년에는 커피만 실은 커다란 배가 이집트에서 왔다. 배로 도착한 화물은 약국으로 옮겨졌다. 사람을 밤새도록 깨어있게 할수도 있는 이상한 물질은 일반적인 음료가 아니라 약물이라는 것이 일반화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이러한 믿음은 깨졌다. 1664년에 출간된 책 한권이 인기리에 읽혔는데, 장 드 테베노의 레반트 여행기였다.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즐기는 다른사람들처럼 마르세유의 부유층도 역사서를 즐겨읽었는데 혼자서도 읽기도 하고 서로 큰소리로 읽어주기도했다. 이들은 테베노의 책에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 음료가 어디서 유래되었으며 약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마시는 음료라는것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다.
테베노는 이렇게 썼다. 투르크인들은 일상적으로 매시간 이 음료를 마신다. '카베'로 알려진 이 음료는 검은 콩으로 만드는데 먼저 금속 팬에 불을 지펴 이 콩을 볶아서 곱게 갈아낸다. 그런다음 '이브릭'이라고 부르는 금속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워 끓여서 팔팔 끓으면 갈아놓은 가루를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넣는다. 가루를 넣은 다음에는 곧바로 화로에서 들어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액체가 끓어 넘치기 때문이다. 다시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끓어 넘치기 전까지 기다렸다 들어내는 것을 10번이나 12번까지 반복한다. 완성된 검은 음료는 도자기잔에 담아내는데 보통 손잡이가 달린 둥근 잔에 담아 채색된 쟁반에 받쳐서 낸다. 이 음료는 아주 뜨거울때 한모금씩 마셔야하는데, 한꺼번에 마시면 그 풍미를 충분히 느낄수 없기 때문이다.
한모금씩 마시는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뜨거워서 입을 데기 때문이다. 이음료는 검고 쓰며 분명히 탄 냄새가 나는데도 '카베하네' - 커피를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를 그들은 이렇게 부른다 - 에서는 한 모금씩 홀짝 거리는 소리가 끓임없이 들려온다. 이 음룐느 위장에서부터 머리로 올라오는 포만감을 방지해주고 졸음을 쫓아주므로 우리 프랑스 상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편지를 써야 할때나 밤새 일하기를 원할때는 저녁 10시경에 카베를 마시는 이들이 있다. 이 음료의 맛에 관해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리 내키지 않지만 두번째부터는 이미 맛을 음미하게된다. 또 많은 효능이 있어 위장을 강하게하고 소화를 돕는다 투르크인들은 카베가 여러질환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한다고 믿고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모두 커피를 마시며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커피를 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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