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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역사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마르세유에서 벌어진 의학적 논쟁 ⅱ

by 앤유 2021. 1. 21.

의사들중에도 커피에 대한 비방을 반박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칭찬받을 만한 사람은 실베스트리 그는 커피를 화학적으로 분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두포가 리옹의 의사 두사람의 도움으로 실험한 결과가 1685년에 세상에 동표되었는데 이 커피 성분에 대한 최초의 분석결과는 현대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즉 커피는 만취와 구역질을 억제하고 여성의 생리불순을 완화하며 소변의 흐름을 촉진시키고, 심장을 강하게하며, 부종, 요로결석, 통풍의 통증을 완화한다. 또한 심기증과 괴혈병을 치료하며, 기도와 성대를 강화하고, 열을 내리며, 두통을 완화시킨다. 이어 두포는 인체를 대상으로 한 갖가지 실험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잠잘 시간에 커피를 마셔도 아무 이상없이 잘 자는 사람도 접하게 되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대해 그는 신경이 강한 사람중에는 커피가 불안과 근심을 덜어줌으로써 오히려 편안히 잠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확신을 피력했다. 

 

 그러나 실험을 기반으로 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의 마음에서 커피가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을 몰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몽펠리에 대학의 덩컨 박사는 두포의 기록에서 '몸이 습하고 찬 사람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다는 대목을 지적하면서 이에 동의했는데, 이것은 커피가 특히 네덜란드인, 영국인, 독일인에게 유효하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추론처럼 보였다. 그러나 덩컨의 결론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로, 그렇다면 프랑스인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킬 필요가 없다는 명제를 이끌어냄으로서 그는 커피의 적군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커피의 사용이 이미 일반화된 18세기에 티솟박사가 펴낸 책에도 같은 주장이 실려있다. 1769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출간한 [건강에 대한 학술적 견해]에서 티솟은 대선제후의 전의 였단 코르넬리우스 분테쿠가 북유럽 전체를 타락시켰다고 했다. 

 아픈사람에게 커피는 100잔이나 처방해주면서 그것이 약효가 있을거라고 믿은 것이 크나큰 재앙을 초래했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커피에 관한 분테쿠의 이론은 정신나간 것이었고, 인체의 순환을 촉진시키는것은 오로지 겉보기에 그럴뿐이었다. "아픈사람들이 자신들의 질환이 과다한 혈관의 두께 때문이라고 믿는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때문에 그들은 해로운 커피를 마셔댄다. 나는 환자들이 식탁에 커피 주전자가 놓인것을 보고있노라면 온갖 악덕이 쏟아져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리게 된다!"

 전임자들고 ㅏ마찬가지로 티솟은 커피를 약국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하되 일상에서 음료로 마시는것은 해로운 행위이며 비난받아야 한다고했다. "위장의 섬유질을 겨속해서 자극함으로써 종국에는 위장을 약하게 만든다. 인체 각 기관의 내벽에 붙어있는 정상적인 점액질이 씻겨 떨어져나가게 한다. 신경은 반복적인 자극 때문에 과도하게 예민해진다. 에너지는 분산된다. 환자들은 느리게 진행되는 열과 애매하게 남아있는 다른 증상들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인체의 유동액뿐만 아니라 혈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커피가 세계각지에서 알코올 중독과 맞서 고군분투하고있다는 사실을 티솟박사는 잘 몰랐다. 그저  "이따금 썪은 커피를 마시면 생각이 명료해지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이해가 더 분명해지므로 저술가나 학자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될수있다." 는 정도만 인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경고를 덧붙이는것을 잊지않았다.

 "우리는 호메로스와 투키디데ㅅ, 플라톤, 루크레티우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그리고 호라티우스가 커피를 마시면서 작업삼매경에 빠졌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지식인들에게 남겨져 이후로도 수십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마르세유의 훌륭한 시민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원래 마르세유 사람들은 소문난 술고래들이었기에 와인을 마시듯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것도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외에서 중상모략이 들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면으로 그다음에는 수군거림으로 나아가서는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치는 식으로 소란은 나날이 커졌다. 문제는 이번 소란이 바쿠스나 아스클레피우스가 입힌 상처보다 커피에게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커피의 적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당시 남프랑스에서 읽히던 몇권의 독일 책중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유명해진 책 한권이 있었다. 제목은 [아담 욀슐라거의 모스크바, 타타르, 페르시아 여행기]이며 1666년에 파리에서 위케포르에 의해 번역 출간되었다.

 이책에 실린 여정은 대부분 사실로 여행가인 욀슐라거는 홀슈타인 공작의 의뢰로 독일 시인 폴 플레밍과 동반하여 떠난 여행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옮겨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커피로서는 불운이라 할 전설이 실려있었다. 페르시아의 왕 모하메드 코스빈에 대해 전하고있는 전설은 이렇다. "왕은 커피를 마시는것이 너무 습관화 된 나머지 여자를 멀리하게되었다. 하루는 왕비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종마를 거세하는 광경을 보고 왜 그토록 멋진 동물을 불행하게 다루느냐고 물었다. 한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종마는 너무 기운이 세서 자꾸 문제가 생기기때문에 온순하게 만들려고 그런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왕비는 커피를 가지고 해결될 일을 괜한 헛수고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종마에게 커피를 실컷 마시게 하면 며칠이 지나지않아 페르시아의 왕이 아내인 자신에게 대하듯 종마도 차갑게 변할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마르세유 사람들로 하여금 커피오 ㅏ소원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몇몇 커피 음용을 고수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선조가 그리스인이거나 로마인이거나 페니키아인이거나 고트인이거나 또는 게르만인이거나 마르세유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가 사람들로 북적이며 불멸하기를 바랐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들은 커피의 재발견이라는 숙제를 라이벌인 파리지엔들에게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