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특히 베르사유궁정이 그랬다.그곳에서 '태양왕' 루이 14세는 바야흐로 성년을 맞이하고 있었다.그는 화려한 축제와 훌륭한 건축물에 남다른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왕이 있는 곳은 어디나 온기와 웃음과 풍요로움이 넘쳤다.루이 14세 덕분에 파리와 베르사유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 했고, 그의 호의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싸늘하고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졌다.각지의 제후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파리와 베르사유 궁전의 햇볕을 쬐고자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태양왕 궁전은 보이는 것마다 장관이었다.
태양왕의 시종와 종자조차도 온몸에서 빛이 반사되는 듯했다. 프랑스인 전부를 부자로 만든 콜베르는 산업의 헤르메스였고, 국토 전역을 요새화한 보방은 프랑스의 헤파이스토스였으며,튀렌은 새로운 아레스, 부알로는 입법부의 아폴로였다.
1669년, 이처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궁정에 때마침 술탄의 사자가 도착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투르크와 동맹을 맺어 독일에 맞설 힘을 갖출 호기였다.신성로마제국의 군대가 계속해서 동유럽을 점령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부르봉 왕가가 스트라스부르와 라인 강의 둑을 지킬 수 있을것인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투르크와 동맹이라는 아이디어는 자칭 '가장 기독교적인 왕'인 프랑스 왕으로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이제 서른한 살이 된) 젊은 루이는 황제에 대항해 헝거리를 공략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니 않았던 패기 넘치는 군주였지만,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와 군사력을 합친다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였다.아무리 태양왕이라도 그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추진할 용기는 없었다.
절대주의 시대였고, "짐은 곧 국가다" 라는 모토를 내건 군주이기는 했으나, 당시에도 여론이라는 것이 있었다.결국 왕은 술탄의 대사를 은밀히 맞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폐하께서는 워낙 남의 시선 끌기를 좋아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루이14세는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여 슐라이만 대사를 접대하기 위한 특별의상을 준비시켰다. 마치 하늘의 별을 따와서 엮은 듯, 다이아몬드로 수놓아진 화려한 의상이었다. 당대의 사가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딱 한 번 입기 위해 만든 그 옷의 가격이 1,400만 리브르였다고 하니 그 호사스러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신들 역시 금과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왕관은 널찍한 테에 얹혀 있었는데, 비단과 부르고뉴산 태피스트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그앞에는 순은으로 만든 식탁이 놓여 있었다. 마침내 사자가 도착했다. 시종은 입구에 남겨두고 혼자서 들어왔다.단순한 모직의 가운을 펄럭이며, 느리지만 늠름한 걸음걸이로 왕에게 다가갔다.얼근 보기에 그는 프랑스 군주와 조신들의 화려한 차림에 별 감동을 받지 않은 듯했다.특별히 당황하거나 존경을 표하는 기색 없이 앉아 있는 왕에게 나아갔으며, 예상과는 달리 엎드리지도 않고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며 고개만 조금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선 채로 몇초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왕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그것은 술탄이 '서방의 형제'에게 쓴 편지였다. 루이는 편지를 받지 안하고 왼편에 선 의전관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의전관이 편지를 받아 개봉한 후 왕에게 바쳤다.
왕은 조그만 목소리로─그처럼 나직한 어조는 커다란 매부리코와 커다란 가발을 쓴 차림새와 대조적이어서 낯설게 보였다─편지가 생각보다 긴듯하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슐라이만 대사에게 그것은 참으로 무도한 행태로 보였다. 위대한 투르크의 황제로부터 온 서한을 그처럼 예의 없이 취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서방세계가 동방을 경멸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즉각 위엄을 갖추고 항의 했다. 그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프랑스의 폐하에게 "왜 일어나서 서한 아래쪽에 명기된 술타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충격을 받은 조신들은 전례 없는 무례함에 할 말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동안, 폐하께서는 "프랑스 왕은 법 위에 있는 존재이며,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투르크의 사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물러갔다.
사자와 그의 시종들은 왕실전용 이륜마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파리로 되돌아갔다. 그는 위풍당당하 저택을 세내어 으리으리하게 꾸며서 파리지엔의 눈을 부시게 만듦으로써, 단순한 모직가운을 입고 루이 왕의 면번에서 받은 수모를 되갚았다. 그의 저택에서는 날씨까지 마음대로 만들어낸다는 소문이 퍼졌다. 방 안에는 페르시아풍의 분수가 춤을 추며, 침실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날아온 장미 향기가 배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과장된 소문이었다.
그러나 호기심 강한 파리의 귀족들이 엄충한 감시 속에서 들어가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틈 멋있었던것 역시 사실이었다. 방들은 은은한 조명을 밝혀져 있었고, 가구근 향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벽 전체에는 광택이 나는 타일이 발라져 있었고, 그 속에는 종유석의 꼭대기에서 가져온 벽감이 들어 있었다. 천장은 다채로운 색으로 꾸며진 돔이였다. 의지는 하나도 없었다! 방문객들은 처음에는 다소 불편해 하다가, 이내 앉거나 쿠션에 반쯤 기대고 누운 자세로 매우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근육의 이완이라고나 할까. 긴장과 호기심으로 무장하는 서방의 사교성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사교 방식이었다. 투르크식으로 웅크리고 앉는 것이 딱히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손님들에게는 풍성한 가운이 제공되었으며, 마음껏 기대 앉거나 팔꾸치를 괴고있으라는 인사가 건네졌다. 처음에는 남자는 별로 찾아오지 않고 그아내들이 주로 방문했다. 후작부인이나 공작부인들이 한껏 성장을 하고, 걱는다기보다는 헤엄치듯이 휼라이만의 저택으로 찾아들었다. 그러고는 쿠션에 몸을 던졌다. 검은 피부의 노예들이 치렁치렁한 투르크가운을 걸치고 나타나 황금 술이 달린 문직의 냅킨에 받친 선물을 올렸다. 뜨겁고 혐오스러운 맛이 나는 음료도 제공되었다. 숙녀들 대부분은 바로 뱉어냈으나,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슐라이만 저택을 자주 방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커피음용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되었다.
그렇다면 집주인은 커피에 감미료를 첨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한 자작부인이 대사의 노래하는 새에게 설탕덩어리를 먹이는 척하면서 살짝 자기 커피잔에 그걸 빠뜨렸다. 근엄한 표정의 집주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숙녀들에게 제공되는 커피에는 설탕이 곁들여졌다.
숙녀들의 방문 덕에, 투르크의 대사는 태양왕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으면서도 궁정의 정황을 시시콜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군비상황이라든가, 제조업, 고위관직의 인사와 군 편성에 대해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동맹관계나 왕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어가는 계쇡에 대해서까지 들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밀을 누설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사는 마치 부하라 카페트를 짜는 것처럼 모아놓은 정보를 정리해보았다. 그러자 루이 왕은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프랑스는 자국의 변방에, 적국인 독일에게 위협이 될만한 악귀 하나 붙이자는 것으로서, 투르크와 동맹을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술탄이 추가로 군사를 보내 비엔나를 공격한다면 루이 왕도 스와비안 다뉴브에 그렇게 많은 원군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슐라이만 대사가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고위층 부인들을 꼬드겨서 갖가지 가십을 이끌어낸 데는 커피의 공이 지대했다.
익숙하지 않은 자극으로 경계심을 풀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온갖 이야기가 술술 늘어놓게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슐라이만 대사를 졸라 투르크의 예법과 관습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으며, 묘한 향기로 온 방을 가득 채우는 커피라는 희한한 음료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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