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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역사

커피의 역사 2부 유럽으로 퍼진 커피향기 - 마르세유에서 벌어진 의학적 논쟁 ⅱ

by 앤유 2021. 1. 21.

아주 큰 주전자에 손님들을 위해 커피를 끓이는 대중 커피하우스들이 많이 있다. 그곳에서는 손님들이 계급이나 신념에 상관없이 서로 어울리고 출입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누구나 거기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수 있다. 커피하우스 앞에는 작은 매트가 깔린 벤치들이 놓여있어서 옥외를 선호하는 이들이 앉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행인들을 구경할수 있도록 되어있다. 때때로 커피하우스 측에서는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플루트나 바이올린 연주자 혹은 가수들을 불러 공연을 하기도 한다. 누구든 카베하네에 앉아있다가 아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관례인데 이는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위해 카베를 대접하겠다는 의미이며 나중에 온 사람은 공짜로 카베를 마실수 있다. 즉 먼저 온 이가 나중에 온 친구를 손님으로 대접하며 반기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커피하우스 예법이라 하여 자바라 부른다 자바는 무료라는 의미를 지니고있다.

 

 이런 글을 보면 레반트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약국에서 사지 않았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된다. 레반트에는 서방의 술집만큼이나 많은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어쨌든 테베노의 책이 출간된 직후에 마르세유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마르세유 주민들은 물론 선원들도 겨냥한 가게였다.

 이를 흉내내는 가게들도 늘어났다. 그러자 두 계층의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와인 양조업자들이었다. 바쿠스의 분노가 이들을 통해 표출된 것이었다. 일찍이 마호메트는 갖가지 원칙을 앞세워 지중해 남부 해안 일대의 포도밭을 뿌리째 흔들어 놓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 커피 - 바쿠스의 패주에서 이점만을 취한 - 가북부해변까지 진출한 것이었다. 저 야만인들의 검은 아폴로는 바야흐로 기독교식으로 와인을 마시던 마르세유로 뱃머리를 돌린 것이었다. 검은 아폴로는 결국 마르세유 사람들이 와인을 무시하게 만들어버렸다.

 당시는 모든사람들이 극단을 향해 치닫던 별난 시기였다. 또 열정이란 필연적으로 배타적이고 질투가 많은 것이었다. 누구도 커피와 와인이 제휴할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커피 음용자들이 동시에 훌륭한 와인 음용자가 될수 있을거란 생각도 아예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몹시 익숙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때문에 디오니소스는 이 포도경작자들과 와인 판매업자들의 분노를 촉발 시켰던 것이다. 이들의 강력한 지지자는 의사들이었다. 아스쿨라피우스의 후예들은 커피가 자신들이 내리는 처방의 규제를 벗어났다는 것에 분노했다. 수년 동안 다른 희귀품목과 마찬가지로 커피는 의사들의 처방이 있어야만 마실수 있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방에가서 사야했던 일종의 약품이었다. 그러나 마르세유 사람들은 이런 성가신 의사 집단의 규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의사들 역시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커피를 독약으로 규정하고 나선것이다. 커피의 음용은 수세기동안 갖가지 박해를 받아왔지만 이번 조치는 좀 색다른 형태였다. 그동안은 종교적 맹신자들과 통치관료들이 커피를 박해해왔지, 의사들이 커피를 유해한것으로 규정한 예는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라비아, 페르시아, 투르크의 의사들은 커피가 몸에 활력을 주고 몸살과 우울함을 쫓아버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렇게 보면 마르세유의 의사들만이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에게 진찰료보다 더 설득력있는 이유가 있었을수도 있다. 혹 이 의사들이야말로 개별적인 사람과 특별한 인종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점을 간파한 첫번째 의사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커피는 열대나 아열대기후에 사는 아랍인들에게는 좋은 음료였으며 북부지방에 사는 이들에게는 몸을 데워주는 특성때문에 더 환영받았을수는 있었겠으나 그 중간 지역의 거주민들에게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음료일수 있었다. 메카처럼 뜨겁지도 않으며 런던처럼 으스스하고 습하지도 않은 마르세유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로울수도 있었다.

 

엑스 지방의 의사회 멤버였던 카스티용과 푸케는 콜롱브 교수를 초청하여 마르세유시민들에게 해로운지 어떤지에 대한 논문을 읽도록 했다.

 콜롱브는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이해하고있었다. 마르세유의 마을회관을 빌려 마련한 세미나에서 그는 대학의 가운을 걸치고 연단에 올라 목청껏 연설했다. 그는 커피가 가는곳 마다 빠르게 폭군으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커피의 음용은 대단한 열정을 일으키며 일단 고무된 열정은 어떤 경고와 박해도 무력화시켜 버린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열렬한 환호속에서 젊은 의사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 음료가 사람들로 하여금 거의 철저하게 와인이 주는 즐거움을 배척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객관적인 견지에서는 맛이나 냄새, 색깔이나 그 어떤면에서도 커피가 발효된 와인만큼 높이 평가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마을회관은 떠나갈듯한 함성으로 가득했다. 콜롱브는 기분좋은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검은 가운을 쉴새없이 펄럭이며 일부 의사들도 처음에는 커피를 예찬하는데 주저함이 없덨다고 했다. "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아랍에서 커피를 아주 훌륭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랍인들은 이 음료가 자기네 땅에서 나는 것이고 음용법을 인간에게 알려준것이 그들의 짐승인 염소, 낙타, 기타 희한한 동물들이기 떄문인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구차한 변명도 영향을 미쳤다. 마르세유의 주변에는 염소용사료가 여기저기 널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어떤사람도 염소를 기를 생각은 하지않는다. 의문의 여지없이 커피 역시 이 지역에서는 인간이 마시기에 적합한 음료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커피가 열을 식혀준다고 하면서 아주 뜨겁게 해서 마시라고들 합니다만, 사실은 커피는 그 성분이 뜨겁고 매우 건조한 물질입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것은 단순히 이븐 시나와 프라스퍼 알바누스를 추종하기 때문만이 아니고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불에 태워진 물질은 극소량일때도 많은 성분을 함유하고있으므로 대단한 힘을 지닌다고 봐야하며 이것이 일단 혈액으로 침투해 들어가면 림프를 공격하고 신장을 건조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커피는 뇌에도 상당히 위협이 됩니다. 왜냐하면 커피는 중추신경계의 유동액과 대뇌표면의 주름을 건조시키는데 몸은 모든 피부의 숨구멍을 엶으로써 마비증세를 극복하려 하기 땜누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커피안에 담겨있는 재는 사람을 무리하게 깨어있도록 할수있는 것이고 신경액을 고갈시키는 것이지요. 그 결과는 무력감, 마비, 그리고 발기불능입니다. 이렇게 혈액이 산성화되면 신체는 이미 한여름의 말라붙은 강바닥과 같은 상태로 변하며 각 조직은 액체 성분을 빼앗기고 골격도 매우 가늘어집니다. 이러한 해악은 특히 성마른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게서 두드러집니다. 그네들은 태어날때부터 간장과 두뇌의 열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지성적인 측면은 극단적으로 약하고 피는 이미 과열되어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커피의 음용이 마르세유 거주민들에게 유해할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마르세유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커피의 음용을 포기했을까? 그때쯤 그들은 이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합창곡'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눈치챌만큼 속속들이 프랑스인이 되어있었다. 그들에게 의사들이란 시시콜콜 따지는 의학 논문과 같은 사람들로 여겨졌다. 현대 희극에서는 의사들이 마치 일자무식한 사람인양 익살의 대상으로 표현된다. 유머감각이 없는 영국인들이나 독일이느 네덜란드인들이었다면 분명히 의학적인 허풍에 속아넘어갔겠지만, 활달한 프로방스인이나 의심많은 마르세유인에게 그런 공허한 소리는 회의를 불러일으킬뿐이었다.

 

 그러나 마르세유 의사들의 반대의견은 처음에 커피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것은 아니었지만 지식인들을 많이 뒤흔들어 놓았따. 특히 17세기 무렵의 프랑스 의사들은 대부분 콜롱브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커피 음용을 적으로 간주했다. 말하자면 이 아랍식물의 열매는 단지 약일뿐이고 매일 마시는 음료로는 사용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점차 커피의 독성에 대한 수많은 루머가 근거없이 퍼져나가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1683년 콜베르가 64게의 나이로 죽자 실제로는 과로사였던것으로 보이는 그의 죽음의 원인이 커피로 인하 위장손상이었다고 소문난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팔츠의 리젤로테가 쓴 편지중에는 하나우-브리켄필드의 공주가 커피를 많이 마셔서 죽었다는 대목이 있다. 사후 검시 결과 독성의 음료가 이 불운한 여인의 위장에 숱한 위궤양을 만들었고 위에는 검은 커피가루가 차있었단,ㄴ 것이었다.(설령 그 공주가 위암에 걸려 쓰러졌다고 하더라도, 나폴레옹의 부검 보고서에서 확인할수있듯이 암세포가 커피가루와 모양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