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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상인, 황제의 커피 - 루이 14세의 탐욕 서유럽에 커피가 소개된 후 10년 동안 이 음료는 그저 기호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경제생활에서 커피가 맡은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비와 생산이 대량으로 증가하고서야 이 '기호품'도 어느 정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점차 커피는 중요한 상품이 되었고, 커피를 즐길 여유가 있는 국가와 군주들, 그들 밑에서 교역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커피를 대하는 태도는 나라마다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수로를 뚫어서, 새로이 역사 위로 떠오른 곳으로부터 밀려드는 이상품을 조절해야 했다는 점이다. 이는 홉사가 제시한 모델에 의거한 국가 분류 ─ 공화국, 입헌군주국, 전제 군주국─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장 성공적인 .. 2021. 2. 5.
농부, 상인, 황제의 커피 - 네덜란드의 자바 커피 ⅲ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에게 부를 가져다준 핵심 상품은 단연 커피였다. 북해 연안 저지대에 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순다 제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식품이었다. 그거 아랍인들이 자신들이 마시려고 얼마간 들여오기는 했으나, 그걸 말레이 제도에서 재배하게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커피플랜테이션을 시작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낸 사람은 네덜란드인 인 빌렘 반 아우트보른이었다. 그전까지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인도인들에게서 음용법을 배워, 차를 마심으로써 각성효과를 얻었고, 알코올성 음료로는 아라크 술과 야자 주를 마셨다. 1690년 아라비아해 해변에 닻을 내린 네덜란드의 뱃사람들은 커피 관목의 가지 몇 개를 잘라냈다. 그들은 호기심에 그걸 암스테르담까지.. 2021. 2. 4.
농부, 상인, 황제의 커피 - 네덜란드의 자바 커피 ⅱ 그러던 어느 날, 먼 동방의 나라에서 교역과 통치권을 쟁취하는 일에 매진하던 식민 개척자들은 조국에서 심각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포르투갈의 거대함이 정점을 넘어섰던 것이다. 정복자들에게 그 뉴스는 멀리서 시작된 지진의 굉음처럼 다가왔다. 국가적 영웅인 바스코 다 가마, 안토니오 아브레우, 알부케르케가 싸워서 이룩한 리스본의 파워는 쇠퇴 일로에 있었다. 먼바다 위에서 과소모된 포르투갈의 에너지는 고갈 위기를 맞았다. 몇십 년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의 힘이 그토록 넓게 퍼져 있던 말레이제도에 또 다른 국적의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해상제국은 남쪽 대양 전체를 주름잡으며 확장을 거듭한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 함대는 다다른 곳 어디에나 머무르고 싶어 했다. 그들은 활기 넘.. 2021. 2. 3.
농부, 상인, 황제의 커피 - 네덜란드의 자바 커피 ⅰ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와 더불아 근대가 시작되었다. 1949년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떠났다가 우연히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이 해에는 바스코 다 가마도 남으로 항해를 떠나 아프리카를 우회하다가 인도로 가는 동부의 항로를 발견했다. 인도! 중세 유럽인들은 아랍 대상들을 통해 페르시아, 인도와 교역하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 후 베니스 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지중해를 통해 교역했으나, 곧이어 투르크가 유럽과 동방 사이에 커다란 장벽을 만들자, 레반트와의 교역은 한층 위험해지면서 급격히 감소했다. "어떻게 하면 투르크의 장벽을 피해 우회할 수 있지?" 서방에서는 이런 불만이 새어 나왔다. "예전처럼 투르크를 공격하지 않고 동방에서 향신료와 금을 들여올 수 있는 길은 없는 .. 2021.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