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4

커피의 역사 1부 이슬람의 와인 - 박해와 승리 쉬오뎃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카와'를 처음 맛보았을때는 언제였을까? 그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부하라에 살았던 저 유명한 아랍의 철학자이자 '의료의 왕자'로 일컬어지는 의사 이븐 시나가 1000년경에 커피를 접하게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커피를 '카와'라 부르지않고 '붕크'라 했는데 지금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커피는 사람들이 널리 소비하던 음료는 아니었다.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이 커피를 마신것은 사실이나, 커피가 아랍과 페르시아 어느곳에서든 '재배'되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처음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와 소말릴란드에서 캐러밴이 가져다 보급했으나 나중에는 배에 실려 홍해를 건너 멀리까지 전파됭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커피는 부자들이나 향유할수있는 값비싼 일용품이었고 더.. 2021. 1. 18.
커피의 역사 - 기적의 음료 쉬오뎃 수도원의 이맘과 수도승들이 처음으로 커피를 맛보았을때 활력을 가져다주는 이 물질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있었을까? 당연히 몰랐을것이다. 수세기가 지나서야 화학자들이 이 약물을 분별해내고 이름을 부여했다. 이물질을 최초로 추출해낸 사람은 독일의 화학자 룽게로, 1820년의 일이다. 문제의 성분은 알칼로이드라고 알려진 물질군에 속해있으며 화학구성은 흔히 카페인이라고 불리우는 트리메틸디옥시퓨린이었다. 반짝이는 하얀 국수모양의 크리스탈 형태의 이 물질은 백조의 솜털이나 눈을 연상시키며, 약간 쓴맛에 향기는 없다. 인간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약은 커피콩 외에도 다양한 식물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자연을 커다란 가면무도회라고 한다면 트리메틸디옥시퓨린은 여러모습으로 위장한 무도회의 손님이나 마.. 2021. 1. 17.
커피와 바쿠스의 전쟁 이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마론파의 승려이자 학자였던 안토니우스 파우스투스 나이론에게서 나왔다. 그는 후에 파리 소르본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가 1710년에 죽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사실 여부보다는 이것이 서방세계와 폭넓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각색된 이야기가 오래된 백과사전에도 나오는데, 1717년 출간된 휘브너의 "자연,예술,산,길드,상업, 그리고 신문, 백과사전" 이 그것이다. 또 동양의 우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꽤 많이 발견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염소의 배설물이 커피콩과 닮아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물의 외형이 닮았다는 것은 그것들 사이에 모종의 신비로운 관련이 있다는것" 이라는 믿음은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횡행했다. 하지.. 2021. 1. 16.
커피의 역사 - 예멘의 밤 용암과 석회암의 표면처럼 뜨거운 예멘의 대지는 밤이 되어서야 잠깐 열기를 식히는 여유를 누렸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은 아침일찍 떠서 밤 늦어서야 기울었다. 밤도 짧고 뜨거워 숨막힐듯 갑갑하기만 했다. 서쪽으로 몇 마일 걸어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물은 얕고 미지근했다. 태고이래 홍해로 알려져온 그 바다이다. 구릉지대 사이로는 좀체 나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산등성이와 메마른 개울에는 관목만 무성했고, 키작은 아카시아들은 메마르고 타는 듯한 대기속에서 여윈 모습으로 움직임 없이 서있었다,. 금색, 갈색 가시금작화의 엽침은 닭벼슬 같은 잎줄기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알로에는 맛이 썼고, 대추야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그너머로 녹슨 빛깔의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용암의 흐름이 만들어낸, 보기에도.. 202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