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오뎃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카와'를 처음 맛보았을때는 언제였을까? 그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부하라에 살았던 저 유명한 아랍의 철학자이자 '의료의 왕자'로 일컬어지는 의사 이븐 시나가 1000년경에 커피를 접하게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커피를 '카와'라 부르지않고 '붕크'라 했는데 지금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커피는 사람들이 널리 소비하던 음료는 아니었다.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이 커피를 마신것은 사실이나, 커피가 아랍과 페르시아 어느곳에서든 '재배'되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처음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와 소말릴란드에서 캐러밴이 가져다 보급했으나 나중에는 배에 실려 홍해를 건너 멀리까지 전파됭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커피는 부자들이나 향유할수있는 값비싼 일용품이었고 더구나 일반에서는 통증을 완화시키는 목적으로 의학적으로 활용되었을뿐 매일 마시는 음료는 아니었다.
11세기와 12세기를 거치면서도 이 같은 커피의 이용형태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는 커피가 1450년 이전에는 예멘에 알려지지 않았었다는 내용이 적힌 아브델카데르의 원고 사본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기록이다. 아마도 이 무렵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제말 에딘 -다바니라고도 알려진 - 이커피 관목의 경작법과 커피 음용법을 예멘에 전해준것을 오해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무렵부터 이 지역에서는 커피를 자체 생산하게 되었으며 비싼값을 치르고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커피가격은 훨씬 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가 매일 음용될 만큼 널리 상용화된것은 아니었다. 그런일은 커피 음용에 대한 종교적 논쟁이 오히려 이 음료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고조시킨 후에야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커피의 음용이 금지되자마자 마셔보겠다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금지'라는 딱지는 평범한 사람에게 '금단의 열매'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이렇게되자 성지메카에서는 상류층의 광신자들이 커피를 상대로 결사항쟁을 선언했고 이슬람교도들이 휩쓸고 지나가는곳마다 그 영향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러던중 1517년에 이집트의 술탄은 메카에 새로운 총독을 임명했다. 카이르베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자존심이 셀 뿐 아니라 대단한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극도로 노회한 세상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닳아서 해진 슬리퍼는 더이상 슬리퍼가ㅣ 아니다"라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곧잘 하곤했다. 이런 이유로 그에게는 '슬리퍼 철학자'라는 다소 조롱섞인 별명이 붙었고 대중의 도덕성을 정화하고자 하는 그의 열의를 우스갯서리로 삼은 풍자적인 글도 나타났다. 그럴 때 격노한 총독이 글귀의 작자를 알아내려고 사람을 보내 알아내면 상대는 어김없이 모스크의 열주아래 앉아서 내키는대로 상상력을 발위하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글귀는 총독인 카이르베이를 공격할 목적으로 지어진것도 아니었고 그럴만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또 그들은 수도 너무 적었다. 결국 카이르베이가 공격해야할 대상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통찰력과 기지를 심어주고 재기발랄함을 끄집어낸 흥분제 그자체로 밝혀졌다.
카이르베이는 좀 창피했던지 자신이 커피를 공격하는 진짜 이유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성서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커피와 커피음용및 커피음용자에 대해 판결을 내리겠다고 공표했다. "나는 사람들이 수세동안 커피를 마셔왔다고 말하는 것에는 상관하지 않겠다. [코란]은 오래된 관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마호메트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손에 들려있는 판단의 검이 무엇이 옳은가를 가르쳐주실것이다."
그는 다수의 울라마와 무프티 장교, 철학자와 법학자들을 불러들였다. 열정적인 성품탓에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먼저 그는 문제의 음료를 준비시켰다. 두명의 노예가 즉석에서 커피콩을 볶고 분쇄기에 간다음 물에 풀어서 커피를 만들었다. 그러자 커피는 카이르베이의 의도와는 사뭇다르게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향내가 아무리 좋아도 안돼. [코란]에도 악마는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카이르 베이가 말했다.
좌중은 총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침묵을 지켰다. 카이르베이는 커피콩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높이 쳐들어보여주면서 말을 이었다. "[코란]의 식탁편에 보면 와인과 도박 그림과 조각물, 그리고 주조물들은 모두사탄이 만든 최고의 사악한 발명품이라고 되어있지."
"와인과는 다르지요!" 한 무프티가 말했다. "그보다는 자연산 숱에 가깝지요. 입에 넣고 이로 빻아보면 목탄과 같다는걸 알게되실겁니다."
"네말은 이게 재라는 것이냐?"
"분명히 닮기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흙이라는것인데 [코란]에서는 흙을 음식으로 금지하고 있다는걸 알지않느냐?"
"잘못알고계십니다!각하" 한 법학자가 말했다.
"볶은 씨앗은 엄밀히 말해 흙이라고 할수없습니다. 식물의 죽은 부분이라고해야겠지요. 또한 그 식물이 금지된것이라해도 일단 불에 익히고나면 무방하다 할수있지 않을른지요."
"나도같은생각이요" 턱수염이 하얀 나이많은 울라마가 말했다 "불은 모든것을 정화합니다. 변형을 ㅌ오해 정화시키는거지요. 비록 꽃과 커피열매의 성분이 깨끗하지 않다고해도 - 그야아직 모르는 일이고 그걸 확인하려고 우리가 이렇게 모였습니다만 - 지금 들고계신 커피콩은 이미 변형이 된 상태이니 말입니다. 무릇 깨끗하지 않은것들도 다른 매개물을 통화하면 정화되는 법이니까요 아부 베크르의 개 이야기를 명심해야합니다. 개라는 짐승 그 자체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소금호수에 빠져 돌처럼 굳어졌을때는 이미 정화가 된것이지요."
"총독은 점점 화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모인사람들은 모두가 당대 최고의 현인들이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숙고해보려고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다음날 같은 시간에 다시 모이라고했다.
"비스밀라!" 다음날 그는 경건한 태도로 회의를 속개했다. "자비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어제의 이야기는 가정자체가 잘못된것이다. 우리는 나무 자체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다. 나는 이것들 브랜디나 꿀술처럼 취하게 하는 음료라고 생각하고있다. 지금 여기 두사람의 하킴ㅁ이 있으니 그들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봅시다."
"그렇게 쉬운문제는 아닙니다." 두의사 가운데 연장자가 대답했다.
"신앙심이 없는자나 술에대해 알고있는법이니 말입니다. 저로서는 벌꿀주나 브랜디를 마셔본적이 없지만 듣기로 강한 술을 많이 마신 자들은 의식이 없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커피를 마셔보니 의식이 두배로 또렷해지는것같았습니다."
"만약 알라께서" 총독은 기운을 얻은듯 말했다. "네 지성을 두배로 강화하고자 했다면 그런 외적인 도움없이 자연히 그렇게 되도록 했을거야"
"그렇습니다" 무프티 몇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커피를 악으로 규정하기에 가장 적잘한 말인듯 했다. 만약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된다면 그건 악마적인것임에 틀리없었다. 사람이 네개의 손을 가져서 훨씬 편리하다고해도 손은 두개여야 한다는것과 같은 이치였다.
"우리중 누구도 취하는것이 무너지 아는이는 없네." 총독은 한결 기분이 나아져있었다. "게다가 커피가 잠을 사라지게 한다는것도 충분히 인정할수 있는 사실이지. [코란]의 제 6장 짐승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지않은가? '알라는 우리에게 아침을 보내시어 밤을 휴식시간으로 정하고 그 경계를 구분하기위해서 해와 달을 주셨다. 또한 코란에 다름과 같은 구절이 있음을 명심하라 이는 전능하신분의 섭리이니라."
참석자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게 외쳤다.
"금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하킴 한사람은 이에 동의하지않았다.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닙니다. 통치자께서는 제 의견도 묻고계십니다. 제가 의술을 행하는 자로서 한마디 해도될까요?"
"말해보게"
"저는 와인의 영향에 대한 나름의 경험을 가지고있습니다. 아 물론 저는 믿음이 깊은자라 와인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와인처럼 무감각을 불러오는 다른물질이 있더라는겁니다. 양귀비라는 식물의 즙인 아편이 그 예입니다. 아편도 의식을 잠들게합니다."
총독은 다시금 괴로운 심정이 되었다. "네말을 듣자니 [코란]의 6장 38절이 생각나는군. '신은 의지를 빗나간 자도 바른길로 인도하신다.'"
제 의견을 더 말씀드려도 되겠지요?"라고 하킴은 물었다. "계속하겠습니다. 커피가 마력이 있는거라면 양귀비 역시 마찬가지일겁니다. 만약 인위적으로 잠을 깨우는 일이 허락되지 않은것이라면 잠들게 하는 일도 그러해야할진대, 96절에보면 '알라는 밤을 휴식으로 규정했다'고했지 낮을 휴식시간으로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편은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사람을 잠들게 하는데 쓰이고있습니다. 그렇다면 각하 밤에 깨어있고자 하는자가 커피를 마실수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자들이 모인 좌중은 파도처럼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은 녹색의 비단예복이 부산하게 펄럭였다. 야윈얼굴에 매부리코를 하고 달변의 입술을 지닌 이 예복의 현자들은 신랄하게 의견을 나눴다. 일부는 늙은 의사와 의견을 같이했으며 일부는 젊은이쪽에 붙었다. 분노로 무력해진 총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이 그쯤되니 그로서는 어느 한족으로 힘을 실어줄수있는 말을 한마디도 할수없었다. 총독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이 진실한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그것이 알라의 뜻일테니."
논쟁은 몇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양측은 한번은 왼쪽으로 또한번은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우세를 보이는 혼전을 거듭했는데 이는 독실한 무슬림에게서 좀처럼 볼수없는 광경이었다. 한 장교는 어두운 빛깔의 볶은 커피콩을 천국에 있는 미녀의 빛나는 두눈과 비교하기까지했다. 급기야 무프티 한사람이 격노하여 입에 거품을 물며 [코란]44장의 구절을 외치는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나무의 찌꺼기는 죄지은자의 음식이다! 그것을 소비한자들의 배는 쇳물이나 끓는물을 마신것처럼 끔찍하게 델것이니!"
논쟁은 점점 더 맹렬해졌다. 해가 지고 저녁예배가 시작되었을때가 되어서야 겨우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예배가 끝난후 또다시 논쟁이 속개될 태세였다. 그러자 아흔살이 넘은 한 학자가 중재에 나셨다.
"여러분들을 보니 서쪽으로 20보 행진하고 동쪽으로 20보 행진하며 모의전쟁을 하는 병사들이 생각나는구려. 또 무크타시가 쓴글도 떠오릅니다그려. 무크타시는 여러곳을 여행했고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런글을 썼소, '알라께서는 내가 신성하든 그렇지않든 그에 상관없이 기뻐하시는것 같았다. 나는 수피교도들과 함께 고깃국물을 삼켰고 수사들과 함께 포리지를 먹어치웠으며 선원들과 함께 뱃사람들의 거친 음식을 섭취했다. 이따금 나는 신앙에 관한 모든 규칙을 준수하기도 했지만 -어떤때는 그러지 않는게 낫다는걸 알면서도 - 불가피하지 않을때인데도 금지된 음식을 먹기도했다. 나는 감옥에 누워서도 극진한 대우를 받았고 강력한 군주들이 내말에 귀 기울일때 한편으로는 호된 매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자 그러니 총독이시여 이곳에 모여서 커피의 측질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것은 불가능한줄 압니다. 저밖에서는 사람에 따라 커피를 금지식품으로 여겨 꺼리기도 허용식품으로 여겨 마시기도 할것입니다."
"진정 독실한 자의 말은 아니군그래." 한사람이 헤어지기전에 비꼬는 투로 말했다.
결국 커피에 대한 논의는 금지여부를 떠나서 바람직하지 못한것으로 결론내려졌다.
깊은밤 카이르 베이는 궁궐 꼭대기에서 성도를 내려다보았다. 메카보다 더 큰 도시도 있었으나 그 어느곳도 두렵지 않았다. 이곳은 교부 아브라함의 족적이 돌에 새겨져 영원히 보존되어 있는곳이며 모퉁이마다 블랙스톤이 세워진 성스러운 카바신전이 있는곳이다. 세계각지에서 인간의 몸과 정신이 신실한 화살처럼 이곳으로 날아온다. 그들은 신성한 신전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고 블랙스톤을 응시한다.
카이르베이는 잠든 도시를 그리고 잠들어있어야 마땅한 도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독수리자리와 백조자리가 빛났다. 오리온자리의 베텔기우스와 황소자리의 알데바란은 창공에서 알라의 영광을 기록하고있었고 모스크의 돌로 만들어진 미나렉이 하늘의 기록을 말없이 추적하고있었다.
순간 어둠으로 덮여있어야할 마을의 여기저기서 불빛이 보였다. 횃불이 담벼락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는가하면 먼 소음이 총독의 귀에도 들려왔다. 심지어 현악기의 소리도 들렸다.
"저들이 밤을 해치고있어."
카이르베이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곧 바로 파수병을 불러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커피하우스로 달려갔다. 구리로된집기들이 가차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중몇은 항거하다 포박된채 감옥으로 끌려갔고 이를 막으려고 그 친구들과 친척들이 몰려들었다. 부상자가 생겨나고 그중 두사람은 싸늘한 시체로 바닥에 쓰러졌다. 세채의 커피하우스가 불탔다.
다음날 커피금지령이 내려졌다. [코란]의 가르침을 거스른다는 이유가아니라 폭동을 야기한다는 이유였다. 커피에 대한 탄압은 그 주 내내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들은 온몸이 결박되어 나귀등에 태워져 마을 전체를 끌려다니며 채찍으로 맞았다. 기록에는 남편들이 밤새 뜬눈으로 커피의 자극을 즐기느라 아내 곁에 눕고자하는 욕망이 사라진데에 대해 이를 질투한 많은 여성들이 남편을 저버렸다고 되어있다.
총독은 카이로에 있는 술탄에게 이 사태를 보고했다.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를 보고하고 군주의 승인을 구했다. 술탄은 선뜻 답하기가 난처했다. 자신은 물론 백성들 모두가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이르 베이에게 보낸 회신에서 술탄은 커피금지령을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코란]의 해석자 가운데 가장 학식이 높았던 이들조차도 커피를 금할 근거를 찾지못했다. 게다가 폭동이 있었다면 그건 커피때문이 아니라 커피를 향유하는 즐거움을 막는데서 비롯된것이다."라는것이 술탄의 답변이었다.
메카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메카에서 일어난 일은 빠르게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이집트, 리비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갔다. 카이르베이가 커피와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소식은 성지순례차 메카에 왔다가 발 빠른 낙타를 타고 귀향하는 이들에 의해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전해졌다. 이제 '카와'는 단순한 각성음료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자극제가 되었다. 종교와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콩에 깃든 각성과 경고의 정신은 악마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이르베이는 커피하우스를 습격한후 망가진 집기를 복원시켜 놓아야했다. 예멘의 와디에서 해안지방으로 수출되는 모카의 양도 상당히 늘었다.
그러나 커피애호가들의 열정은 그에 못지않게 열정적인 커피반대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이 음료의 음용이 사람을 더 호전적으로 만들고 그 때문에 쉽사리 칼과 몽둥이를 집어든다는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일례로 1521년 카이로에는 밤낮으로 커피하우스에 진을 치고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했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지역의 간이식당에서 기분전환용으로 판매하는 음료는 와인이 아닌 커피였다. 그러다보니 독실한 삶을 원하며 밤에는 때맞춰 쉬고싶어하는 사람들과 커피 음용자들사이에 다툼이 곧잘 일어나는것이었다. 이들은 커피가 비판정신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며 술탄이 내부의 욕망에 이끌려 사악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따.
그리하여 커피금지령 - 20년전에도 예멘에서 발효되었던 - 이해제된 이집트땅에서 또다시 공공장소에서의 커피음용을 금지하는 두번째 법령이 포고되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여전히 원하는 만큼 마음껏 마실수있었으므로 이 법은 글자그대로 사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에서는 은밀하게 마셨다고 하지만, 알레포,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테헤란에서는 창피해하는 기색없이 드러내놓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만한 이유는 수백가지나 됐다. 더운낮동안 커피는 몸을 차갑게 해주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시키며 추운밤시간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온기를 증진시켜주었다. 특히 구릉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커피가 더욱 권장되었는데 그것은 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인 트라몬타나의 악영향을 물리칠수있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커피는 두통의 완화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시때때로 광신도들은 커피에 대한 항전을 계속했다. 이들은 화로 위 구리주전자에서 검은 음료가 끓고있는것만 보아도 분노했다. 그들은 심판의 날이 오면 커피를 마시는 자들은 얼굴이 커피색처럼 검게 변해버릴것이라고 공헌했다. 물론 이런 공언은(지금은 이슬람교도가 되었지만) 원래 검은 피부로 태어난 에티오피아인들과 다른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았다.
때는 이슬람의 힘과 위대함이 널리 퍼져나가던 시대였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한 십자군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뒤 바야흐로 기독교계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지고있었다. 이슬람의 목적은 반 이상 이루어졌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투르크가 총공격을 하기도전에 무너졌다. 비잔틴제국은 사라졌으며 발칸 사람들은 대거 처형되거나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나아가 투르크는 이슬람왕국의 통일에 박차를 가하여 가뜩이나 빈약한 술탄의 지위를 무너뜨려버렸으며 이슬람과 오스만제국은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 되었다. 또한 1517년 셀림1세는 이집트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북서쪽으로는 아라비아를 편입시켰다.
통일된 투르크의 영토에서 커피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커졌다. 야영지와 전장에서는 투르크의 전사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었고 가정에서는 철학적인 연구집단에게 하는것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심지어 여성들까지 이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노동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 밝혀졌고 투르크에서는 아내가 주는 커피를 남편이 거부하는것이 이혼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바야흐로 이 국가적인 음료가 식품의 일반적인 항목이 되었음은 물론 영양면에서도 유효하다는 결론과 함께 빵이나 물에 못지않은 중요한 음식물로 여겨지게 된것이다.
이런 정서가 널리 확산되자 광신도들의 공격은 지엽적인 의미밖에는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커피의 폐해 즉 '자아의 확장'으로 인해 사람들이 알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상으로 커피를 생각하게 되며 결국 커피를 우상화하게 될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근거있는 소리였다. 극단적인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와인을 숭상하는 것 만큼이나 참을수 없는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게다가 이무렵 커피와 와인사이에 맹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새로 제국으로 편입된 식민지는 최근까지도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므로 자연히 포도재배가 활발했는데, 와인을 마시는 일에 대한 반대급부로 선교의 차원에서 커피 음용이 열렬히 주창되기 시작한것이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와인 상점들이 아예 문을 닫는 사태가 속출했으며 이런 우여곡절끝에 '블랙 아폴로' 커피는 다시한번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 승리자로 기록되게 되었다.
"마침내 커피콩이 승리했다돠"라고 시인 벨리히는 노래했다. 커피는 카디들과 코란 신봉자 사이의 오랜 반목을 평정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커피의 미덕이 만장일치로 인정되었다. 또한 다마스커스 알레포, 카이로 등지의 전투에서 승리한데 이어 골든혼에서도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 금단의 음료인 '와인의 향기' - 를 쫓아버렸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과 커피향은 떼어서 생각할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제임스 베이커가 말하듯 일출즈음에 이스탄불의 바닷가를 향해가면 "솜위에 보석을 얹어놓은듯 사원의 둥근지붕과 광탑이 안개위로 뽐내듯 솟은 광경이 보이고" 후각은 커피가 볶아지고 정제되는 향기의 맹습을 받는다. 이 보이지 않는 풍미는 페라와 갈라타 전역을 지배하여 밤의 한기를 몰아내고 아침의 온기를 북돋아준다.
1554년 알레포 출신의 하킴과 다마스커스 출신의 젬이라는 두 상인이 골든혼의 번화가에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 커피하우스들은 멕테비이르판, 즉 '문화의 학교'라고 불렸으며 커피또한 '체스두는 사람들과 사색가들의 우유'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매가 넓은 흰색 실크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체스보드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한손으로는 체스말을 옮기면서 다른손으로는 턱을 쓰다듬는 풍경이 밤낮으로 연출되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