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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역사

커피와 바쿠스의 전쟁

by 앤유 2021. 1. 16.

이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마론파의 승려이자 학자였던 안토니우스 파우스투스 나이론에게서 나왔다. 그는 후에 파리 소르본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가 1710년에 죽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사실 여부보다는 이것이 서방세계와 폭넓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각색된 이야기가 오래된 백과사전에도 나오는데, 1717년 출간된 휘브너의 "자연,예술,산,길드,상업, 그리고 신문, 백과사전" 이 그것이다. 또 동양의 우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꽤 많이 발견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염소의 배설물이 커피콩과 닮아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물의 외형이 닮았다는 것은 그것들 사이에 모종의 신비로운 관련이 있다는것" 이라는 믿음은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횡행했다. 하지만 중세의 서구인들에게서보다는 동양사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결국 이것이 염소와 커피 관목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추정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 설화의 중요한 핵심은 염소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라 - 물론 이 밖에도 사육하던 가축의 행동때문에 인류의 탐구가 시작된 예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 커피열매가 지닌 마술적인 힘에 대한 빠른 인식이라 할수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염소이야기보다 더 의미심장한, 커피의 기원에 관한 또다른 전설이 있다. 페르시아의 현대 무용담에, 알라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때 천사 가브리엘이 전능한 자의 명을 받고 나타나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 음료는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의 귀퉁이에 세워져있던 블랙스톤만큼이나 검었다고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이 비밀의 약이 바로 쓴맛의, 자극과 활력을 주는 카와 혹은 카베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커피의 유래에서 진실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커피의 음용으로 고대 사회가 미지의 마력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 이전까지는 와인이 고대 사회의 역사를 주도하는 변인 역할을 했다. 고대인들은 포도를 발효시켜 추출해낸 즙을 마심으로써 취기를 이끌어내는 소위 '바쿠스의 자극'과 친밀했다. 반면 커피콩에든 신비로운 활력의 원천, 즉 카페인이 발휘하는 안티 바쿠스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 중세 유럽의 문을 두드려, 일생의 길동무 역할을 하게될 커피를 전해준 이들은 라이벌이었던 활기 넘치는 아랍문명이었다.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무슬림들이  '사물의 좋은 특질을 잘 끄집어내고 머리아픈 논쟁을 잘하는 것은 모두 아랍문명의 '냉철하면서도 정열적이고 정열적이면서도 침착한' 성격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가의 뇌에 작용하는 커피의 효과와 깊은 연관을 맺고있다. 헬라스의 스토아학파 학자들은 아타락시아, 즉 운명의 힘에 대한 순응과 순종을 설파했지만, 이는 미것이라는 이름아래 아랍의 검이 자신들을 정복하도록 스스로를 방치해두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들 정복자들의 안티 바쿠스적인 자극, 즉 이성에 대한 맹목적 추구와 구원을 간구하는 종교적 지성주의의 교리 등 이슬람교의 전통적 특징은 커피향기와 사촌지간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바그다드의 모스크에 이르는, 칼리프의 제국을 가로질러 널리 전파된 건축의 특징적인 양식은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이룬 것이지, 결코 와인을 마시는 술꾼들이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어인의 토론방식으로 이야기하며, 뾰족한 집게 손가락 같은 광탑 미나렉을 높이 세웠다. 개개 건축물은 건축물 역시 그들의 언어처럼 풍부한 인식과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븐 시나와 이븐 루슈드의 대담한 철학 체계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건축양식이라고 할수있다. 

 

 정녕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 이슬람교도들은 안티 바쿠스적이어야했고 바쿠스문화 최대의 강점인 고전적인 문화를 떨쳐버려야만 했다. 앞의 전설에서 창시자 마호메트가 커피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나, 천사 가브리엘이 후세의 칼리프에게 그 용도를 알려주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마호메트가 와인을 맹렬히 비난함으로써 커피가 인간의 주뇌를 바꿔놓기전에 이미 인간의 마음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란'의 식탁이라는 장에서도 창시자 마호메트가 와인의 활용을 금한 대목이 있다. 그는 수천년동안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또한 일상의 유약함으로부터 탈출할수있는 유일한 방책을 제공해온 중독성 약물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는 어떠한 형태의 도취나 자아의 확장도 일체 거부했다. 서구에서 인생과 문학을 배제한 문명과 고대세계의 예술은 결코 존재할수 없었다. 와인은 고전문화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 접합제의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어떤 이유로 이 같은 획기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이슬람교보다 앞선 종교에서도 와인의 금지를 명할만한 근거는 찾아볼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슬람교가 사회와 하나가 될 무렵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와인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것이다. 

 

 유대의 전설에 따르면, 노아는 대홍수 이후에 바로 와인을 발견했다. 이 전설은 [창세기]의 20장 및 9장의 구절과 관련이 있는데, 모두 만취가 야기하는 나쁜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밭을 경작하였다. 어느 날 그는 와인을 마시고 만취했다. 그는 벌거벗은 채 장막에서 잠이 들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벌거벗은 못을 보았다. 함이 두형제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셈과 야벳은 옷을 집어 뒷걸음질로가서 아버지의 나신을 덮어주었다. 얼굴은 뒤로 향하여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않았다." 무슨 까닭인지 셈과 야벳은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고 함은 저주를 받았다. 이 우화는 와인의 과도한 음용의 폐해에 대해 깨우침을 주면서도, 합당한 음용은 비난받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구약성서]에도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와인의 합당함 음용을 금한 내용을 찾아볼수 없다. 게다가 그 한부분도 고대 헤브라이인들의 평범한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민수기]6장에 나오는 나실인에 대한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월 - 나실인의 서원 - 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말며 포도즙도 마시지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 자기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의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말지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머리에 대지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거룩한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니라. 그 부모나 형제자매가 죽은 때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고 했다.

 

 이렇든 신에 대한 헌신을 위한 통과의례중 다소 지나치다 싶은 와인에 대한 경계는 와인이 주는 즐거움으로 인한 겅령의 혼돈을 막기 휘함이며 와인이 성스런 헌신 자체를 흔들리게 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옛시대의 필경자는 금기를 무너뜨리는 와인의 마비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에서는 와인의 효과를 남성적 힘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대표되는 삼손이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달라 없애는 면도기로 비유하기도 한다. [민수기]에서는 과도하게 와인을 마신 결과로 빋어지는 정신적교란 상태를 죽었거나 부패하는 육신의 마비와 같은 맥락으로 간주하여싿. 유대의 위생학에서는 이러한 마비가 죽은자에게서 산 자에게 쉽게 전이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여기에도 근본적으로 와인의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는 없다. 나실인들은 예외적으로 신에대한 헌신의 서원을 행하는 사람들이었고, 서약이 끝나면 그들 역시 와인에 대한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말하자면, 나실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서의 대부분이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멋진 선물이라고 여기는 유대인 특유의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대목인 셈이다. 나실인들의 이야기와 [예레미야서] 35장에 나오는 레갑인의 이야기와 [잠언록]23장의 과음에 대한 경고성글을 제외하면 사실상 구약성서는 와인에 대한 찬송으로 가득차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인은 헤브라이인의 결혼식 축하연에 사용되었으며 유월절의 첫째날밤 가족만찬에도 빠지지않는 음료였다. 그 무렵 팔레스타인은 온통 포도밭이었으며 전도서에서는 "출발하라. 기뻐하며 빵을 먹어라.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와인을 들이켜라"라고 했고 심지어 탈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에게 허용된 모든 기쁜을 누릴권리가 있다. 특별히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는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유대인들 사이에서 와인은 인기있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또 사회성을 증진하는 촉매로 대단히 애호되었고, 금기시되는 경우는 사제나 재판관들이 공무를 수행할때 정도였다. 그러니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성서]에서 와인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찾아내어 [코란]에 인용하려 해도 마땅한 구절을 찾을수 없었음은 물론, 기독교의 교의에서도 그 같은 구절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는 한발 더 나아가 와인의 특성을 문명화 시키고 통일시켜 신성시하는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최후의 만찬'의 미스터리에서는 포도의 과즙이 예수의 피로 화했으며 고행과 금욕을 주요 덕목으로 하면서도 이를 와인의 음용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초기 기독교사회에서는 와인이 빵만큼이나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가장 거룩한 희생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독교는 육신의 고행을 끊임없이 설파해왔으며, 톨스토이에 이르러서는 금주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은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의 거짓없고 우애어린 지적 영적 효과를 찬양했다. 그만큼 기독교는 안티 바쿠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명백히 안티 바쿠스였다. 유대교나 기독교를 막론하고 그 이전의 모든 종교를 압도하는 에너지로 마호메트는 와인을 비난했다. 그의 주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점은 선대의 사람들이 절제와 근엄 외의 무엇도 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마호메트는 와인을 근절시켰다. 이슬람이 발을 디디는 곳마다 포도밭은 다른 용도로 변경되었고 포도의 경작은 종말을 고했다. 지중해의 남부 해안 일대는 혜지라 이후 포도재배를 포기했다.

 

 1868년 독일의 여행가 게하르트 롤프스는 고대인들에게 키레나이카로 알려져온 지역을 여행하면서 바쿠스 사원이 황폐화된것을 보게되었다. 옛 투르크의 빌라예트 지방의 주요 재원 역할을 했던 수입품목 가운데는 와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지방에서는 와인의 재료가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쿠스가 아프라키 북부를 지배했을 당시에는 와인을 수입할 필요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지리학의 측면에서도 이슬람에 의해 주도된 이 혁명의 힘은 막강했다. 마호메트의 도래와 와인에 대한 금기는 지중해 유역 남부를 따라 번성했으며, 근본적으로 바쿠스에 속해 있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문화를 끝장내버렸다. 

 

 독극물학자인 르윈은 이렇게 말했다. "와인의 음용법을 알아낸사람은 노아만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그 같은 혁신가는 많다. 때로 그 발견은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알코올음료의 조제과정에서 추론적으로 알게되기도 하였다."

 

 문명의 유일한 지류인 헬레니즘은 와인의 마력에서 얻어지는 영적인 확장을 숭배했다. 노아가 인간으로 남아있는 반면에 바쿠스-디오니소스가 신격화된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영향때문이었다. 그리스신화의 많은 부분에서 바쿠스의 숭배와 관련된 대목을 찾아볼수 있으며 머지않아 바쿠스의 제전은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를 주눅들게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최종적인 바쿠스의 정복은 우리가 그리스의 비극에서 배웠듯이 인간의 마음과 사회질서에 엄청난 격변을 불러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와인을 금지하는 맹렬한 유세를 펼치면서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거에서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요소를 찾지 못했고, 오히려 헬라스에서 원하던 것을 걷었다. 그가 주창한 금욕운동을 받아들이 ㄴ유일한 이들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바쿠스 숭배가 지나친 데 대한 반작용이 변덕스러운 헬라스인들의 마음에 조화와 중용을 가져다주었던것 같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은 바쿠스의 지배아래 있던 동맹을 깨뜨려버릴때까지 바쿠스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원래 주제는 '디오니소스의 고난'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고난'이라고 하면 다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때부터 이미 디오니소스를 엄격주의자들에 의해 잘못 취급된 신으로 여겼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안티 바쿠스의 붐을 확실히 보여준 이는 카드모스에 이어 테베의 왕위를 계승한 펜테우스였다. 그는 디오니소스의 숭배가 자신의 왕국에 전해지는 것을 반대했고 이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어머니와 두 누이는 바쿠스의 광기에 휩싸여 펜테우스를 야수로 착각한 나머지 그를 갈가리 찢어 죽였던 것이다.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왕국과 그의 생명을 부지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금주법이 효력을 발휘했던 12년 혹은 그에 버금가는 기간동안 만연했단 많은 문제들 - 암살, 밀매, 갱단의 횡행, 타락, 대규모사회일탈 등 - 을 신과의 동맹에 의해 해결함으로써, 그리스신화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핵심적 인식에 도달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어쨌든, 소크라테스학파 사이에서 절주가 널리 퍼져있던 것처럼, 그리스인들 사이에 절제의 중용운동이 존재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펜테우스 비극은 와인의 절대적인 금지를 요구한 이들, 즉 당대에 스스로를 위해 극기를 실천하던 '티톨랄러스'라고 하는 절대적 금주주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사실 비극이라는 그리스어는 염소에 노래가 합쳐진 낱말이다.(아마 당시의 가수들이 염소가죽을 뒤집어쓰고 노래를 했기 때문이거나, 숫염소가 일종의 포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쨋거나 이 발굽 갈라진 생물의 지칠줄 모르는 감수성은 확실히 대단하다고 할수밖에 없다. 커피의 발견에 대한 아라비아의 우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데 이어, 그리스신화에서도 와인의 토템이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염소는 항상 취한 상태로 묘사되는데, 때로는 와인으로 인해 취한 상태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로 커피의 자극에 흥분되어 있기도했다.

 

 "예술의 진보가 아폴로 숭배 및 디오니소스 숭배의 복합성, 이중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미학의 미스터리에 접근하는 실마리를 얻을수 있다." 라고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연구의 첫머리에서 말한바있다. 그는 이어 "이 두가지의 충동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자하면, 우리 스스로가 몽상과 도취라고하는 별개의 예술적 세계로서 그것들을 주의깊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고했다. 이쯤에서 인용하는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문제는 디오니소스가 도취의 신인것은 사실이라고해도, 지금껏 우리가 이해해온 대로라면 아폴로가 몽상의 신이라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것이다. 분명, 아폴로에게 어울리는 것은 완벽하게 꺠어있는 이미지들이다. 빛나는 도리아 미술의 창안자로 여겨지는 아폴로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꿈의 세계로서 이해하고 있는 분야에 속하는 현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이 때문에 우리는 니체가 신의 영적인 불변의 영토로서 꿈의 세계를 아폴로와 묶어놓는 부분을 읽으면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니체와는 달리, 요즘은 꿈과 도취를 상반되는것이 아니라 쌍둥이와 같은 개념으로 간주한다. 잠자는 동안 우리의 심상에 떠오르는 그림은 꿈의 세계에서 침투한 무의식의 소산으로, 알코올의 영향으로 혼미해진 정신상태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만취끝에는 반드시 잠을 자게 되며, 잠은 곧 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 아닌가. 똑같은 계단에 있는 사물끼리는 한발짝 높은 계단에 있느냐, 낮은 계단에 있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뿐 양극화될수없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니체의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커피와 와인처럼 적대자라고 할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니체 아폴로는 와인의 마법과 대적할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이 독일의 철학자가 생각하는 아폴로가 왜 필요이상으로 디오니소스-바쿠스를 닮았는지에 해답이 된다. 니체가 얘기했듯이 초논리성과 계몽 그리고 소크라테스식 사고에 의한 초기 그리스문화의 침식은 에우리피데스시대에 나타난것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일이다. 실제로 그리스문화의 침식이 시작된것은 아랍의 전성이이며 그들의 강력한 검은 음료는 만취뿐아니라 꿈까지 배격함으로써 바쿠스와 힙노스를 함께 몰락시켜버렸다. 커피는 바쿠스에게 델파이의 아폴로보다도 훨씬 무서운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아폴로에게도 적이 되었다. 커피에 의해 고무된 두뇌는 곁눈질도 하지않고 곧장 아폴로 숭배자들을 향해 내달았다. 논리의 도주 마차, 즉 사고라고 하는 준마의 성난 질주는 꿈꾸는자 아폴로의 조화롭고 편안한 명쾌함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때때로 니체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바바리안들의 디오니소스를 구별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문명의 역사에서 커피가 '바바리안의 아폴로'였을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바바리안의 아폴로가 그리스인의 아폴로를 대신했다면 고대 그리스문명에서는 무엇이 꽃피었을까를 질문해보는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의 적수인 커피가 똑같이 일상생활에서 음용되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백과전서]의 편집인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최소한 한사람, 트로이의 헬렌으로 알려진 헬레네인이 커피에 대해 알고있었다는 견해를 장난삼아 다뤘다. 이들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온 구절을 인용하여 커피의 효과와 분명 유사한 점이 있다는 마법의 음료를 언급하고있다. 이는 4권에 나오는 에피소드인데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그의 아버지를 찾아 헤메다가 메넬라우스의 식탁에 앉아 있는 대목이다. 일행은 울고 있었고 비탄의 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이때 제우스의 딸 헬렌이 생각을 바꿨다. 그들이 마시는 술에다 즉각 모든 고통과 화를 풀고, 온갖 설움을 잊게 하는 약을 탄것이다. 이 약을 탄 술을 마신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형제나 사랑스런 자식이 칼을 맞고 쓰러진다고해도 그날만은 눈물 한방을 흘리지 않게 된다. 이런 신기하고 값진 약을 그녀는 일찍이 톤의 부인 폴리담나에게서 얻었다. 폴리담나는 이집트 사람이었는데 이집트의 기름진 땅에서는 약초가 굉장히 많이 났다. 개중에는 한컵으로도 사람을 고칠수있을만큼 약효가 좋은것도 있었고. 독이 들어있는 것도 있었다. 그 고장사람들은 누구나 비범한 의술을 지니고있어 의사라고해도 될 정도였다."

 

놀랍게도 이 글은 신경계통에 작용하는 트리메틸디옥시퓨린, 즉 카페인의 치료효과를 거의 정확히 표현해내고 있다. 알코올이 늘 감상적인 슬픔을 촉진하는 데 비해, 한모금의 카페인은 눈물의 분비를 억제한다.

 

 잘 알려진것처럼 진한 커피를 마신후에 눈물을 흘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술마신 이들을 하루종일 눈물없이 지내게 만든 헬렌의 약은 네펜테스였던것일까? 흔히 그것이 이집트로부터, 어쩌면 상이집트와 에티오피아로부터, 또 카파로 알려진 땅에서 건너왔다는 추정은 지나친 것일까? 이슬람교가 발원하기 이전에 이미 커피나무가 재배되었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헬렌의 약이 와인과 커피의 혼합물이었을것이라는 정보를 이탈리아의 여행가 피에트로 델라 발레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그녀가 투약한 약은 인도 대마 혹은 해시시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피에트로 델라 발레는 투르크, 이집트,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인도 등지를 여행했으며 그의 여정은 1614년에서 1626년까지 계속됐다.

 18세기 초에는 요즘의 각성제, 마취제, 자극제에 해당하는 약물을 고대인들이 어느정도나 이해하고있었는지 추정하는 작업이 학자들의 즐거움이었던 듯 하다. 예를 들어 파스키우스는 커피는 구약성서 의 아비가일이 나발에 대한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다윗에게 가져다군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고 단언했다. 물론 사무엘서 상권 25장 18절에 언급된 '볶은 곡식 다섯되'는 분명 밀을 의미한 ㄴ것으로, 이를 커피로 생각하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의 헬렌이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놀라운 약은, 당시로서의 와인이 지닌 에너지와 정면으로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메로스가 글을 썼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물질이 아니었다. 실제로 예멘의 뜨거운 와디에서 커피열매를 다량으로 얻어내기전까지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커피와 와인! 각성과 수면. 커피의 궁극적인 효능이 각성하게 하는것이라면 와인의 궁극적인 효능은 그와는 반대로 잠들게 하는 것이었다. 

 

 수면의 반대개념은 니체가 생각한 꿈이아니라 각성이었다. 커피콩에서 각성을 추출해내고 이를 달여서 마력을 지닌 음료로 만들어 다음 세기에 전해줄 임무를 맡은것은 아랍인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아폴로식의 명확성으로 무장하고서 수면에 대항하겠다는 대범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일생의 반을 잠으로 보내는 사람은 인생을 반만 사는것이다."

  

 아랍인들은 무의식과 어둠에 대항해싸웠고 중력이 부여하는 구속에 맞섰다. 그들의 투쟁은 현대문명이 생각하기 힘든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천일야화 에서 "무사하려거든 절대로 잠들지말라"는 대담한 문구를 처음 읽으면 낯선 전율을 느끼게된다.